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루이나 계승전쟁/주요 전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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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= 전술적 특징 === '''정찰 실패의 연쇄''' 이 전투의 가장 큰 특징은 '''양측 모두 상대를 오인한 채 전투에 들어갔다'''는 점이다. 이는 개인의 과실이라기보다 조우전이라는 형태 자체의 속성이었다. 당시 교리는 회전에 앞서 기병 정찰로 적의 규모와 배치를 확인할 것을 요구했으나, 로엔필드에서는 첫 정찰 보고가 틀렸고 그 이후 이를 수정할 기회가 없었다. 접촉이 시작된 뒤에는 지형과 연기 때문에 관측 자체가 불가능했다. '''중대 종대의 마지막 사례''' 왕당파가 시도한 중대 종대 돌격은 계승전쟁에서 이 규모로 시행된 마지막 사례다. 이 실패 이후 왕당파 부대들도 점차 산개 대형으로 이행했으며, 1884년 이후로는 밀집 대형 공격이 기록되지 않는다. 다만 이 변화가 교리의 개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. 왕당파에는 교범을 다시 쓸 기구가 없었고, 각 부대가 경험을 통해 개별적으로 조정했을 뿐이다. '''방어 우위의 확인''' 로엔필드는 1880년대의 화력 조건에서 방어 측이 얼마나 유리한지를 양측 모두에게 확인시켰다. 병력에서 3할 이상 앞선 쪽이 정면 돌격에 실패했고, 그 손실은 방어 측의 두 배 가까웠다. 이 인식이 이후 양측 지휘부의 방침을 결정했다. 손힐은 결전 회피 방침을 강화했고, 왕당파는 이후 대규모 정면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다. '''탄약 문제의 첫 노출''' 왕당파 무장의 혼용 문제가 실전에서 처음 드러난 것도 이 전투였다. 구형 개조 소총과 수입 소총이 한 부대에 섞여 있어 탄약 재분배가 불가능했고, 돌격 실패 후 후퇴 과정에서 일부 부대가 탄약이 떨어진 채 물러났다는 기록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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